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문단 편집) == 꿈 많은 셋째 황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bbb528717afc785d220a0337fcbc813.jpg|width=100%]]}}} || || '''1906년도 모습''' || 유아 시절의 마리야는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장난끼가 많았다. [[시녀]]들이 목욕 시켜주는 도중에 뛰쳐나와 그 상태로 복도를 걸어다니기도 했고 가끔씩 어머니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 황후]]의 식탁에서 [[과자]]를 훔쳐 먹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알렉산드라 황후는 마리야를 꾸짖으며 방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10살이 넘으면서 점차 온화한 성격의 얌전하고 조용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마리야는 [[러시아]]식 미인으로 성장하고 가족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 [[니콜라이 2세]]가 [[장티푸스]]로 사경을 해매게 되자, 자신의 방에 있는 [[니콜라이 2세|아버지]]의 초상화를 밤마다 보며 울기도 했다. 할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를 닮아 건강하고 힘이 세 때때로 가정교사들을 번쩍 들어올리는 장난을 쳤다.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던 1917년 초 황녀 자매들은 [[홍역]]에 걸렸는데, 마리야는 가장 늦게 걸려 황실 군인들을 설득하려 외출하는 어머니를 따라가기도 했다. 무척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한 마리야에겐 꿈이 있었다. 바로 '가정'을 이루는 것. 그녀는 자신의 [[니콜라이 2세|아버지]]와 [[헤센의 알릭스|어머니]]와 같은 낭만적인 사랑과 연애결혼을 꿈꾸며, 언제나 결혼과 가정에 대해 동경하는 꿈 많은 소녀였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부모인 [[니콜라이 2세]]와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 황후]]가 연애결혼을 했고 그만큼 부부 금슬도 좋았기 때문.[* 그렇다고 알렉산드라 황후의 집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황후의 아버지는 [[헤센 대공국|헤센]]의 대공 [[루트비히 4세(헤센)|루트비히 4세]]이고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차녀 [[앨리스 모드 메리|앨리스 공주]]로, 엄연히 러시아의 황제와 혼인이 가능한 통치 가문의 공녀였다. 다만 마리야의 친할머니 [[덴마크의 다우마|마리야 황태후]]는 며느리감으로 프랑스 공주를 원했고, 황태후의 친정 덴마크와 황후의 친정인 독일이 사이가 나쁜 것, 활달한 시어머니와 음울한 며느리의 성격 차이, 알렉산드라가 연달아 딸만 넷을 낳는 등의 이유로 고부관계가 냉랭했다고 한다.] 하지만 1918년 [[러시아 내전]] 당시 본인과 가족들이 모두 처형 당하면서 끝내 이루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1916년,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 [[니콜라이 2세]]는 전선에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 [[헤센의 알릭스]]와 두 언니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은 다친 병사, 장교들을 치료했고, 마리야와 아나스타시야는 어리기 때문에 옆에서 조수 역할을 했다. 마리야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곳에서 만난 장교와 친해져 아버지에게 가끔 그의 안부를 묻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